MT교육 에세이] 우리 아이 자기 사주로 잘먹고 잘살기
[머니투데이 최한주수원과학대학 교수][[MT교육 에세이] 우리 아이 자기 사주로 잘먹고 잘살기]
남이 장군은 조선 세조~예종조의 인물로 28세로 삶을 마감한 뛰어난 무장(武將)이었다. 그는 여진족 토벌에 큰 공을 세운 실존 인물인 동시에 민간과 무속에서 받들어 모셔지는 장군신 중의 하나이다. 비범함 능력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죽음을 당한 그의 불우한 운명은 오늘날 그를 신격화하여 남이 장군 신앙의 전승을 가능케 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인 쓴 조선시대의 역사서인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남이 장군의 사주(四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상(領相) 권람에게는 딸이 있어 사위를 택하는 데 남이가 이에 응하니, 권람이 복자(卜者)에게 일러 남이의 사주를 보게 하였다. 남이의 사주를 본 복자는 "이 사람은 반드시 요절할 것이니 안 됩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권람은 다시 자기 딸의 사주도 보게 하였다. 복자는 "따님은 그 명(命)이 매우 짧고, 또 자식도 없겠으나 두 사람이 혼인을 하면 마땅히 복을 누릴 것이며 남이도 따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했다.
소년장군으로 유명했던 남이는 태종의 외손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상이 남달랐고 담력이 뛰어났던 비범한 인물이었다.
당시 권람은 계유정란 때의 정난공신 1등으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좌의정의 지위까지 오른 최고의 세도가였다. 그에게는 딸이 넷이었고 위로 세 딸은 시집을 가고 열여섯 살인 막내딸의 사윗감을 물색 중이었다. 하루는 정승인 한명회가 생일음식을 보내왔는데 막내딸이 그 음식 중에서 홍시를 먹고는 쓰러지더니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때 밖에서 하인이 들어오더니 문밖에 어떤 도령이 와서 돌아가신 아씨를 살려낼 수 있다고 한다고 전하였다. 권람은 반신반의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들어오게 했다. 들어 온 도령을 보니 체격이 좋고 인물이 잘 생긴 청년이었다. 이 도령이 딸의 방으로 들어가니 죽었던 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도령이 방에서 나오니 딸은 다시 죽는 것이었다.
권람은 도령에게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고 도령은 벽사축귀(사악함을 막고 귀신을 물리치는 것)하는 약을 지어오라고 이르고 죽은 딸의 몸을 손으로 주무르고는 지어 온 약을 먹여 살려냈다고 한다. 이 도령이 바로 남이였다.
권람은 부인과 의논한 끝에 죽었던 딸을 살려낸 은인에게 딸을 시집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사주를 보는 사람을 불러 남이의 사주를 보게 하니 신랑이 소년등과하여 병조판서까지 하겠으나 28세에는 죄를 뒤집어쓰고 옥사를 할 팔자라고 했다.
이어 신부의 사주를 보더니 어서 택일을 하고 혼례를 치르라고 했다. 신부의 수명이 신랑보다 짧기 때문에 생전에 남편 덕에 온갖 호강을 다 하다고 또한 팔자에 아들이 없으니 남편이 옥사를 해도 뒷걱정이 없으니 이 아니 좋으냐고 얘기한다.
권람은 어쨌든 죽다 살아난 딸이니 그것만도 감사히 여기고 남이와 결혼을 시킨다. 과연 그 예언대로 권람의 딸은 남이보다 2년 먼저 죽고 남이는 병조판서까지 지내고 28세에 역모의 혐의를 받고 옥사를 하게 된다.
머니투데이 최한주수원과학대학 교수 natureten@naver.com
'역사속으로 > 이야기한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왕조에서의 사주 수용 (0) | 2019.07.21 |
---|---|
노무현과 (0) | 2019.05.21 |
이길이 나의길 (0) | 2019.05.01 |
인사하는 거인 --겸손한 거인 (0) | 2019.03.16 |
[스크랩] 인생의 길흉과 사람의 뜻 (0) | 2019.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