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웅 4형제…남은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 [밀착취재
울산 ‘호국영웅 4형제’ 알리는 박형준 추모사업회장 / "한 집안 4형제가 국가유공자, 아시아 35억 중 울산이 유일" / 나라 위해 목숨 던졌지만… 남은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
울산에는 특별한 ‘호국 영웅’이 있다. ‘국가 유공 4형제’이다. 한 집안의 4형제가 6·25 전쟁과 월남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쳤다. 2005년이 돼서야 추모사업회가 결성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추모사업회도 유족인 이부건(80)씨가 만든 것이었다. 4형제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 있다. ‘국가 유공 4형제 전사자 추모사업회’의 박형준(70) 회장을 18일 울산시 남구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 입구에서 의문이 생겼다. 박 회장의 사무실 문 입구에는 ‘국가 유공 4형제 전사자 추모사업회’가 아닌 ‘산수원애국회’라고 쓰인 명패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물었다.
박 회장은 “한 집에 4형제가 모두 국가유공자인 사례는 제가 조사한 결과, 아시아 35억명 중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울산이 유일하죠”라며 “호국가문’인데도 아직 덜 알려진 탓인지 보훈회관에 사무실을 얻지 못해 산악회인 산수원애국회 사무실에 더부살이하고 있습니다. 해결해야 할 숙제 중 하나입니다”라고 답했다.
박 회장이 들려준 ‘4형제’ 이야기는 이렇다. 4형제는 울산시 남구 신정동에서 태어난 6형제 중 장남 민건(육군 하사), 차남 태건(육군 상병), 삼남 영건(육군 상병), 막내 승건(해병 중사)이다.
1950년 8월 15일 함께 입대한 장남, 차남, 삼남은 6·25 전쟁에서 전사했다. 삼남은 어디서 전사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세 아들의 전사 소식에 아버지는 몇 년 뒤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1964년 막내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내 형제가 셋이나 장렬하게 전사했는데, 젊은 피가 끓는 놈이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겠냐”며 해병에 자원입대했고, 베트남 꽝나이지구에서 전사했다. 세 아들에 이어 막내의 전사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쓰러져 병상에 누웠다가 6년 뒤 세상을 등졌다.
유일한 유족인 사남 이부건 씨는 형제의 이름이라도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비석 4개만 덩그러니 세워진 울주군 두동면 소재 묘지에서 1997년부터 추모제를 지냈다. 그러다 2005년 국가보훈처 등의 지원을 받으며 추모사업회가 만들어졌고, 2007년 울산시와 울주군이 비석 앞에 충효정을 건립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덜 알려진 탓에 충효정은 등산객들의 음주·가무 장소가 되기 일쑤였고, 담장이 없는 탓에 비석은 멧돼지들에게 밀려 자주 쓰러졌다.
4형제의 이야기가 알려진 것은 2014년쯤이다. 이씨가 산수원애국회를 찾으면서다. 박 회장은 “어르신을 만나 자세한 사정을 듣고 산수원애국회 회원들이 추모사업에 열정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며 “군 생활을 30년 한 나에게는 더 특별하게 와 닿았다. 4형제의 이야기를 알리는데 봉사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팔을 걷어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시와 울산시의회, 울산 국가보훈지청을 매일 찾아 4형제의 이야기를 알리고, 관련 사업을 건의하고 있다고 했다. 박 회장은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끈질김 덕분인지 성과도 나오고 있다”며 웃었다.
추모사업회의 회원은 150명으로 늘었다. 매년 현충일 지내던 가족 주관의 조촐한 추모제는 37개 단체 50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2년 전부터는 충효정 주변에 담을 두르고, 단을 놓는 조경작업이 진행 중이다. 울주군 선바위에서 충효정 진입로까지 도로를 만드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도로가 만들어지면 ‘호국4형제로’라는 이름이 붙여질 예정이라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울산지역 학교에서 쓰이는 교과서에 4형제의 이야기가 실리기 시작했고, 군부대에서도 신병교육자료로 쓰이게 됐다.
4형제의 이야기는 2016년부터 창작뮤지컬로 만들어져 공연되고 있다. 국악 동인 ‘휴’의 고경아 대표가 뮤지컬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박 회장은 “4형제의 이야기가 뮤지컬이 된다면 훨씬 더 잘 전해지고 알려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매년 6월 한 차례씩 공연되던 뮤지컬은 시민의 호응을 얻어 올해 2차례 공연됐다. 500석인 관람석도 가득 차 모두 1000명이 관람했다. 오는 10월 중 울산 내 군부대에서 공연하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공연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서울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추모제 전에는 묘지에 4형제의 흉상을 세울 예정이다. 추모사업회의 활동을 지켜본 한 회원의 지인이 비용을 기부했다.
박 회장은 “울주군 주관의 추모제를 시 주관으로 승격하고, 충효정 앞에 ‘4형제 박물관’을 지어 호국교육장으로 활용하는 사업, 주차장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해 하루빨리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힘들어진 유족 이씨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박 회장은 “나라를 위해 4형제가 목숨을 던졌지만, 남은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이 어렵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며 “정부가 독립을 위해 힘쓴 분이나 나라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 가족들이 적어도 힘들게 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은 “청소년과 청년이 나라를 위해 피 흘린 호국 영웅의 거룩한 헌신이 빛나는 자유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여생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알리는 일에 바치고 싶다”며 “4형제의 이야기를 울산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이 알아주고 기리는 날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울산=글·사진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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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국가 유공 4형제 전사자 추모사업회 회장이 18일 현재 진행하고 있는 추모사업에 관해 설명하면서 청년들의 애국심 함양을 강조하고 있다. |
울산에는 특별한 ‘호국 영웅’이 있다. ‘국가 유공 4형제’이다. 한 집안의 4형제가 6·25 전쟁과 월남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쳤다. 2005년이 돼서야 추모사업회가 결성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추모사업회도 유족인 이부건(80)씨가 만든 것이었다. 4형제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 있다. ‘국가 유공 4형제 전사자 추모사업회’의 박형준(70) 회장을 18일 울산시 남구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 입구에서 의문이 생겼다. 박 회장의 사무실 문 입구에는 ‘국가 유공 4형제 전사자 추모사업회’가 아닌 ‘산수원애국회’라고 쓰인 명패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물었다.
박 회장은 “한 집에 4형제가 모두 국가유공자인 사례는 제가 조사한 결과, 아시아 35억명 중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울산이 유일하죠”라며 “호국가문’인데도 아직 덜 알려진 탓인지 보훈회관에 사무실을 얻지 못해 산악회인 산수원애국회 사무실에 더부살이하고 있습니다. 해결해야 할 숙제 중 하나입니다”라고 답했다.
박 회장이 들려준 ‘4형제’ 이야기는 이렇다. 4형제는 울산시 남구 신정동에서 태어난 6형제 중 장남 민건(육군 하사), 차남 태건(육군 상병), 삼남 영건(육군 상병), 막내 승건(해병 중사)이다.
1950년 8월 15일 함께 입대한 장남, 차남, 삼남은 6·25 전쟁에서 전사했다. 삼남은 어디서 전사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세 아들의 전사 소식에 아버지는 몇 년 뒤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1964년 막내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내 형제가 셋이나 장렬하게 전사했는데, 젊은 피가 끓는 놈이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겠냐”며 해병에 자원입대했고, 베트남 꽝나이지구에서 전사했다. 세 아들에 이어 막내의 전사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쓰러져 병상에 누웠다가 6년 뒤 세상을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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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6일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 충효정에서 국가유공 4형제 전사자 추모사업회 주관으로 울산 출신 국가유공 4형제 전사자의 추모제가 열렸다. 이들 4형제는 6·25와 월남전에서 전사했다. 연합뉴스 |
유일한 유족인 사남 이부건 씨는 형제의 이름이라도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비석 4개만 덩그러니 세워진 울주군 두동면 소재 묘지에서 1997년부터 추모제를 지냈다. 그러다 2005년 국가보훈처 등의 지원을 받으며 추모사업회가 만들어졌고, 2007년 울산시와 울주군이 비석 앞에 충효정을 건립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덜 알려진 탓에 충효정은 등산객들의 음주·가무 장소가 되기 일쑤였고, 담장이 없는 탓에 비석은 멧돼지들에게 밀려 자주 쓰러졌다.
4형제의 이야기가 알려진 것은 2014년쯤이다. 이씨가 산수원애국회를 찾으면서다. 박 회장은 “어르신을 만나 자세한 사정을 듣고 산수원애국회 회원들이 추모사업에 열정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며 “군 생활을 30년 한 나에게는 더 특별하게 와 닿았다. 4형제의 이야기를 알리는데 봉사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팔을 걷어붙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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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6일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 충효정에서 국가유공 4형제 전사자 추모사업회 주관으로 울산 출신 국가유공 4형제 전사자의 추모제가 열렸다. 연합뉴스 |
그는 울산시와 울산시의회, 울산 국가보훈지청을 매일 찾아 4형제의 이야기를 알리고, 관련 사업을 건의하고 있다고 했다. 박 회장은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끈질김 덕분인지 성과도 나오고 있다”며 웃었다.
추모사업회의 회원은 150명으로 늘었다. 매년 현충일 지내던 가족 주관의 조촐한 추모제는 37개 단체 50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2년 전부터는 충효정 주변에 담을 두르고, 단을 놓는 조경작업이 진행 중이다. 울주군 선바위에서 충효정 진입로까지 도로를 만드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도로가 만들어지면 ‘호국4형제로’라는 이름이 붙여질 예정이라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울산지역 학교에서 쓰이는 교과서에 4형제의 이야기가 실리기 시작했고, 군부대에서도 신병교육자료로 쓰이게 됐다.
4형제의 이야기는 2016년부터 창작뮤지컬로 만들어져 공연되고 있다. 국악 동인 ‘휴’의 고경아 대표가 뮤지컬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박 회장은 “4형제의 이야기가 뮤지컬이 된다면 훨씬 더 잘 전해지고 알려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매년 6월 한 차례씩 공연되던 뮤지컬은 시민의 호응을 얻어 올해 2차례 공연됐다. 500석인 관람석도 가득 차 모두 1000명이 관람했다. 오는 10월 중 울산 내 군부대에서 공연하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공연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서울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추모제 전에는 묘지에 4형제의 흉상을 세울 예정이다. 추모사업회의 활동을 지켜본 한 회원의 지인이 비용을 기부했다.
박 회장은 “울주군 주관의 추모제를 시 주관으로 승격하고, 충효정 앞에 ‘4형제 박물관’을 지어 호국교육장으로 활용하는 사업, 주차장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해 하루빨리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힘들어진 유족 이씨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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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국가 유공 4형제 전사자 추모사업회 회장이 18일 현재 진행하고 있는 추모사업에 관해 설명하면서 청년들의 애국심 함양을 강조하고 있다. |
박 회장은 “나라를 위해 4형제가 목숨을 던졌지만, 남은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이 어렵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며 “정부가 독립을 위해 힘쓴 분이나 나라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 가족들이 적어도 힘들게 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은 “청소년과 청년이 나라를 위해 피 흘린 호국 영웅의 거룩한 헌신이 빛나는 자유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여생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알리는 일에 바치고 싶다”며 “4형제의 이야기를 울산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이 알아주고 기리는 날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울산=글·사진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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