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옹(邵雍, 邵康節)(1011-1077)
범양(范陽) 출신으로, 자는 요부(堯夫)이고, 호는 안락선생(安樂先生) 또는 이천옹(伊川翁)이라 했다. 시호(諡號)가 강절(康節)이어서 흔히 소강절(邵康節)선생으로 불린다. 증조부가 송 태조 연간에 군관을 지냈지만 집안 대대로 선조들이 벼슬하지 않았고, 아버지인 소고(소고 989~1167)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소옹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때 과거시험에 전념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 후 몇 번인가는 소명을 받았지만 끝내 관도(官途)에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삼십대 후반에는 강학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몰두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문산(蘇門山)의 백원사(百源寺)에 머무는 동안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힘써 배웠다고 한다. 나중에 그는 견문을 넓히기 위해 이곳저곳 여행을 하며 명산대천을 두루 살펴봤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친구도 사귀었다. 또한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도(道)가 여기에 있구나’라며 깨달았다고 한다. 그 후 북해(北海)의 이지재(李之才, 자는 정지<挺之>)를 만나 하도낙서(河圖洛書)와 복희(伏羲)씨의 팔괘, 천문, 역법 등을 배워 크게 깨우쳤으며, 또한 선천상수학(先天象數學)을 이어받음으로써 자신의 학문적 기초로 삼았다.
소강절은 인종 황우(皇祐)원년인 1049년 낙양(지금의 허난성 뤄양시)에 정착하여 가르치는 일을 생업으로 하였으며 사마광 · 부필 · 장횡거 · 정명도 · 정이천 등 보수적 셩향의 구법당(왕안석 등의 신법에 반대한 보수파)인물들과 사귀며 당대의 학자로 평생을 보냈다.
비록 가정환경이 넉넉지는 못했지만, 자칭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 부르며 스스로 즐거움을 누렸으며, 매일 서너 잔의 술을 마시고는 취흥(醉興)이 오르면 시를 한 수 읊곤 했다.
세상사나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자유로이 소요하는 경지 속에서 일생을 보냈다. 인종 가우 연간과 신종 희령(熙寧) 연간에 장작감주부(將作監主簿) 등의 벼슬을 제안 받았지만 모두 병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희령 10년인 1077년에 세상을 하직하였고, 철종 원우(元祐)연간에 강절(康節)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소강절선생의 철학은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고 유교의 역철학(易哲學)을 발전시킨 특이한 수리철학(數理哲學)이 특징이다. 선천학(先天學)이라는 새로운 역학을 창시하고 만물은 모두 태극(太極)에서 말미암아 변화, 생성한다고 주장했다. 음(陰), 양(陽), 강(强), 유(柔)의 4원(四元)을 근본으로 하고, 4의 배수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다. 소강절은 4라는 숫자를 가지고 우주 만물을 헤아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세(歲) ∙ 월(月) ∙ 일(日) ∙ 진(辰)이라든지, 원(元) ∙ 회(會) ∙ 운(運) ∙ 세(世) 등이 그것이다. 이를 설명하면 진(辰)을 가장 작은 시간의 단위로 삼아, 12진을 하루<一日>라 하고, 30일을 1개월(月)로 하며, 12개월을 한 해<歲>로 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 해는 12개월, 360일, 4,320진이 된다. 이와 같은 계산은 우리가 흔히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계산법이다. 그러나 소강절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 우주 만물의 변화 진행까지도 측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위의 시간들은 우주 만물의 변화에서는 아주 짧은 기간이라 할 수 있으나, 이를 넘어 변화 진행의 긴 기간으로서 원 ∙ 회 ∙ 운 ∙ 세를 말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세 ∙ 월 ∙ 일 ∙ 진을 땅의 네 유(維)라 부르고, 원 ∙ 회 ∙ 운 ∙ 세를 하늘의 네 시(時)라 한 것이다. 소강절에 의하면 원 ∙ 회 ∙ 운 ∙ 세를 세 ∙ 월 ∙ 일 ∙ 진의 순환하는 과정과 같은 비례로 추산하여 30세(歲)를 한 세(世)로 하고, 12세를 한 운(運)으로 하며, 30운을 한 회(會)로 하고, 12회를 한 원(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한 원(元)은 4,320세(世)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가장 짧은 시간인 진(진)으로부터 원(元, 4,320☓30년=129,600년)에 이르기까지를 하늘과 땅이 한차례 새롭게 되는 과정이라 한다면, 일년 사이에 한차례 새롭되는 사물은 하나의 원에 이르기까지 129,600번의 새로운 변화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의 원이 되기까지 너무나 길고 유구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전체 대우주의 조화가운데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이 느끼는 일년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즉, 인간이 일년에 한차례 새롭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번의 원이라는 기간 안에 우주 만물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소강절의 사상은 대연력(대연력)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대연력이란 당나라 승려 일행이 만든 것인데, 인도의 역법을 새롭게 작성한 것이다. 소강절의 한 원(元)의 숫자를 가지고 하늘과 땅이 열린 때부터 소멸해서 없어지기 까지에 이르는 숫자로 생각한 것은 불교의 경전가운데 ‘하늘과 땅이 이뤄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없어지는<成住壞空>’ 숫자를 일 겁(劫)이라고 한 내용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내용으로 보아 소강절의 사상은 도교 이외에도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대표적 저술인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는 천지간 모든 현상의 전개를 수리로 해석하고 그 장래를 예시한 철학서이다. 관물내외편(觀物內外編)에서는 허심(虛心, 마음을 비움), 내성(內省, 자기 성찰)의 도덕 수양법을 설명했다. 그 외의 저서로는 선천도(先天圖), 어조문대(漁樵問對), 관물편(觀物篇), 시집인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매화시(梅花詩) 등이 있다.
소강절선생과 관련된 일화들
진(辰)년의 어느 추운 겨울날(12월 17일 오후 5시경) 소강절선생은 매화나무에 않아있는 겨울새 두 마리를 보았다. 눈이 소복히 쌓인 매화나무에 새 두 마리가 앉아 있으니 화조도(花鳥圖)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정겨운 풍경이었다. 이를 그윽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새들이 싸움을 했다. 한 마리가 부리로 다른 새의 날개를 쪼아대며 소리를 질러대니 다른 한 마리도 지지 않으려고 대항하니 나뭇가지에 쌓여있던 눈이 우수수 떨어지고 새들도 기진맥진하여 죽음직전의 바쁜 숨을 몰아 쉬었다. 이에 소강절선생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괘(卦)를 풀어보았다. 본래 움직임이 없거나 예지할 필요성이 없는 사물이나 일거리에 대해선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금은 새 두 마리가 싸움을 하다가 죽어가니 반드시 무슨 연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소강절선생이 작괘한 후 살펴보더니 ‘내일 저녁에 한 여자가 아름다운 꽃을 꺾다가 발각되어 달려가다 넘어져 다리를 다칠 것’으로 판단되어 식구들에게 내일 꽃을 꺾는 소녀를 보더라도 그냥 모르는 척 하라고 일러 두었다. 과연 다음날 저녁에 동네 아가씨가 매화꽃을 꺾었는데 이를 본 어린 남자 아이가 소리지르니 아가씨가 놀라 달아나다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고 한다.
어느날(卯年 3월 16일 卯時)에 소강절선생이 낙양 중심에서 손님들과 더불어 만발하여 핀 모란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한 손님이 선생에게 묻기를, “꽃이 이렇게 아름답고 무성하게 피었는데, 여기에도 무슨 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소강절선생이 말씀하기를 “(뜬금없이 꽃을 구경하다가) 질문을 던졌으니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없지요. (또, 물어보지 않았으면 모르되) 물어보았으니 점쳐 볼 수 있습니다.”라고 하며 점을 쳐보더니 말하기를 (괴이한 일이로다. 이 꽃은 내일 오시(오시)에 말(말)이 짓밟아서 망가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과연 다음날 오시에 한 벼슬아치가 노닐다가 모란꽃을 구경하는데 두 마리의 말이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다가 놀란 말이 꽃밭 사이로 뛰어들어 모란꽃이 다 망가지고 말았다.
하루는 소강절이 의자 하나를 두고 수를 미루어 계산한 후, 의자 밑에 쓰기를 “몇년 몇월 몇일에 신선이 앉아서 부숴질 것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날이 되어 도인(道人)이 찾아와서 앉다가 의자를 부숴뜨리고 부끄러워 하면서 소강절에게 사과하니, 소강절이 말하기를 “물건이 이루어지고 부숴짐에는 수가 있는 것인데, 무엇을 개의하십니까? 또한 공은 신선이 아니십니까? 자리에 앉으셔서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하고는 의자 밑에 쓴 것을 보여주니, 노인이 놀라면서 급히 일어나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소강절 선생이 세상을 뜨기 얼마 전, 자신의 9대손에게 큰 위기가 처할 것을 내다보았다.그리고 가족들에게 겹겹이 봉해진 상자 하나를 내 주며 말합니다."언젠가 나의 9대손이 큰 위기에 처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 상자는 그 때를 위해 주는 것이니 절대로 열어보지 말고 잘 보관하여라."
세월이 흘러 소강절 선생의 9대 독자가 살아가던 중, 미처 자손을 두기도 전에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관아에 잡혀갑니다. 당시 지엄하던 법 앞에 사형을 언도받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저의 9대조 소강절 할아버지께서 제게 남기신 함이 있습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꼭 열어보고 싶습니다."현감은 그의 9대조 할아버지가 전설적인 대 학자 소강절 선생임을 알자 소원을 받아들여, 사람을 시켜 그 함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현감은 그 함이 관아 안으로 들어오자, 존경하는 마음에, 그 함을 공손히 받으려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그 순간, 천둥같은 소리가 나며 관아 건물이 무너져 큰 대들보가 현감이 앉았던 의자를 덮쳤고, 의자는 박살이 났습니다. 너무 큰 놀라움과 안도감을 뒤로하고 현감은 가져온 함을 열어봅니다.그 함 속의 종이에는 "救汝壓梁死(구여압량사), 活我九代孫(활아구대손)"이라는 글귀가 써 있었습니다...
救汝壓梁死 (그대가 대들보에 깔려죽을 것을 내가 구해주었으니)
活我九代孫 (그대는 나의 구대손을 살려 주시오)
이에 현감이 다시 조사해 보니 소강절선생의 9대손은 무죄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 외에도 소강절선생에 관한 일화는 수없이 많다.
-네이버와 다음의 지식백과를 응용 정리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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