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자 집안 학동에서 국운을 말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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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과묵해 보이고 생각이 깊은 사람일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이강산(李江山, 42)씨는 무게있는 자세에 목소리도 바리톤이어서 왠지 자꾸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다.
역술인으로서 이강산씨는 일반인에게는 물론이고 역술인들에게도 생소한데 그 이유는 그가 지금가지 아마추어를 자처하고 있었을 뿐 역술을 업(業)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술인으로서는 아직 젊다고 할 나이인 그는 그러나 역술의 여러 가지 분야 중 하락이수(河洛理數)에서 만큼은 우리 나라를 통틀어 손꼽을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 역술인이다.
하락이수(河洛理數).
득괘(得卦)를 하여 주역(周易)의 상수학(象數學)인 하락이수의 원전을 해석. 인생의 운로를 판단하는 이 역술 비법은 그러나 괘를 뽑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 괘상을 갖고 찾아낸 원문을 우리말처럼 정확히 해석해야 인생의 운로를 밝힐 수 있는 것인데 과연 그가 그런 정도의 한학 실력을 갖고 있단 말일까.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이 하락이수가 신효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고 예리한 역술 비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 하락이수를 구사한다는 역술인을 만나보면 괘를 뽑더라도 얕은 한학실력으로 잘못된 해석을 내려 전혀 엉뚱한 결과를 예측하는 경우를 목격하곤 했는데 과연 그가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런지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다소 의문이었다.
“저의 조부께서 한학자이셨습니다. 제가 여섯 살 되던 해 타계하셨지만 그보다 어려서부터 한학공부를 했고 국민학교 때에도 어머님의 영향을 받아 신문을 보며 한자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물론 평생 한학과 하락이수를 공부하신 분에게는 결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저 나름대로는 감히 하락이수를 말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5억원을 사업으로 날리고 운명학을 연구
그의 고향은 충남 아산. 지난 ‘80년부터 5년간은 금융회사에서 일했었고 ’87년에서 2천만원을 가지고 주식투자를 했다. 이 돈을 가지고 그해 5억원을 버는 수완을 발휘하여 5억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자금을 대고 경영은 삼촌이 하였는데 ‘93년도에 삼촌이 타계하면서 사업이 급속도로 기울어 결국에는 사업에 투자한 돈을 모두 날리고 빚만 남는 처지가 되었다.
‘재물이 이렇게 쉽게 생겼다가도 또 쉽게 나갈 수 있는 것이로구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당시 그가 갖고 있던 최대의 화두(話頭)였다.
“지난 ‘87년부터 명리를 공부했습니다. 운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서였지요. 처음에는 <사주핵심강의>, 정현우씨가 쓴 <신비의 운명학>등을 보고 운명과 사주에 대한 감(感)을 잡았지요. 다음에는 <실용사주학>같은 책을 보고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사주의 기초를 터득한 그는 다음부터 역술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백권의 책보다 한 명의 스승이 낫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전국을 찾아다니며 본인의 사주를 말하고는 ‘과연 얼마나 적중률이 높은가’, ‘역술로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 수 있는가’를 검증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지난 운세 등을 비교하여 적중률이 높고 학문의 깊이가 있다 싶으면 10만원을 내놓고 별 신통치 못하면 2만원을 내놓는 등 수업료를 단단히 지불하고 나름대로 연구를 하였는데...
“유명하다는 분들을 찾아다니다 보니까 70~80퍼센트 정도는 사실과 맞아떨어지더군요. 그러나 이 학문이 절대적으로 완벽할 수는 없다보니까 여러 가지 의문의 생겼고 저는 이 문제를 역술의 여러 가지 방법을 터득하면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강산씨는 역술의 명인으로서 육임(六壬)의 대가인 최봉수(崔鳳秀,68)씨에게서 6년간 사주와 육임을 배워 역술에 관한 탄탄한 기초를 쌓았고 이어서는 박래옥, 홍몽선, 조성우 선생 등 국내의 내로라는 역술인에게서 역술의 다양한 술법과 비전(秘傳)되는 내용들을 전수받았다.
큰 뿌리는 하락이수로, 잔 가지는 사주로...
그러다가 지난 ‘94년. 그는 뒤늦게 서정기 원장으로부터 사주학의 진수라 할 수 있는 하락이수를 사사받기 시작했다.
하락이수는 주역이라는 방대한 학문 중 진희이 선생이 쓴 내용에 소강절 선생이 주석을 달은 것인데 주역을 완전히 운명학 쪽으로 돌려놓은 학문으로서 그 적중률이 높다는 것은 여러 번 언급한바 있다.
주역의 상수학이라는 하락이수에 대해서 조금 더 언급하자면, 주역은 원래 한문 문화의 발상지인 중국의 상고대를 거슬러 올라가 복희씨의 팔괘(八卦)와 주나라 문왕의 팔괘를 얻어 그후에 주공이 효사를 붙이고 노나라의 성인 공자((孔子)가 십익의 완성을 이루어 대략 2천5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성(四聖)이 역사한 경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역은 세계 유일의 양면학리(兩面學理)를 가지고 있는 바 이것이 글자 그대로의 이의학(理義學)과 상수학(象數學)으로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주역 첫장에 나오는 건위천괘에 ‘초구(初九)는 잠용(潛龍)이니 물용(勿龍)이라’(초구는 물에 잠겨 있는 용이니 쓰지 마라)와 같은 것은 이의학이며 상수학이란 길흉화복을 정밀하고도 무궁무진한 방법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사주와 하락이수를 같이 보니까 상호보완적인 작용이 있고 적중률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인생의 큰 뿌리는 하락이수를 보고 잔잔한 가지는 명리로 해석하면 틀림이 없지요.
특히 하락이수가 잘 맞는 사람은 사주를 따로 보아 줄 필요없이 놀라운 적중률을 보이는데 더러 틀리는 경우에는 사주로 보완하여 적중률을 높입니다.”
하락이수와 사주를 활용한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사람은 그가 귀신같이 맞춘다고 해서 역술인이 아니라 무속인(巫俗人)으로 알고 가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
9년여 동안을 아마추어를 자처하던 그는 최근 역술원을 개업하고 이름을 얻고 있는데 그동안은 줄곧 무료로 사주 등을 봐주면서 실력을 쌓아왔다고 한다. 아마추어였지만 실력으로는 프로 역술인을 능가할 정도여서 이미 개업을 생각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사정상 역술인으로 이름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그가 겪었던 일화가 많다.
서해 페리사고와 기후를 예측
그이 매형은 매년 백령도에 놀러가는데 그 해에는 가기로 한 날짜에 절대로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평소 처남이 역술공부를 하고 있고 신통하게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던 매형은 할 수 없이 백령도행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이 매형이 떠나기로 했던 날 서해 페리사고가 발생했다. 주변에서 정말 신통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 사고가 발생할 줄 알고 매형을 가지 못하게 만류했었을까.
“우리 나라는 신자진(申子辰)이 합이 되는 날과 무신(戊申), 무자(戊子)일에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데 서해 페리호가 사고났던 날은 전체적으로 운이 좋지 않은 날이며 매형의 당일 일진도 좋지 않아 자중하라고 했던 것인데 그것이 바로 맞다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는 같은 예로 ‘95년도의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사고도 사고 전날이 무자일이라 그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같은 원리로 오행의 흐름을 보아 기후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지난 774년은 무오년(戊午年)으로서 크게 더웠고 이 흐름은 다시 오는 ‘98년도에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런 것을 사업에 활용하면 크게 도움이 되리라는 것.
일진과 얽힌 얘기를 그는 여러 가지 갖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경우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동네에 사는 꼬마가 그의 집에 자주 놀러왔었다고 한다. 여섯 살난 꼬마가 무척 귀여워서 잘 돌봐주었는데 어느 날인가 우연히 꼬마의 사주를 알게 되었다. 당시는 그도 최악이라 할만큼 어려웠던 한해였는데 꼬마의 사주를 보니 자신과 비슷해 특별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일진 등을 따져보고 아이 어머니에게 오는 4월 7일을 특히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본인도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4월 7일, 바로 그 아이 어머니가 아이를 둘러업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이가 높은 곳에 올라가 있다가 떨어져 크게 다쳤는데 이만한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것.
“저는 제 경우에도 매일 일진(日辰)을 보는데 바이오 리듬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 특징입니다. 먼저 그 아이의 연운을 보고 일진을 따져 보니까 특별히 좋지 않은 날이 나오게 되더군요. 저는 단지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지 특별한 신통력이 있던 것은 결코 아니지요.”
그의 부인도 처음에는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이루어진 이 학문에 회의를 갖다가 이제는 너무 자 들어맞으니까 완전히 신뢰를 하고 있다는 것. 그는 지난 ‘95년 3월에 도둑을 맞을 일이 있었는데 그이 부인 일년 하락이수 운세에 도둑을 맞을 일이 이미 나와 있는 상태여서 크게 놀라지 않았고, 이제는 부부가 모두 하락이수를 신뢰하고 운명이 있다면 이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형수가 대덕에 사는 관계로 대전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찾아온 어느 학생의 예비고사 점수가 250점 정도였지만 운세가 너무 좋아 서울대학교에 원서를 내라고 권유. 합격했던 일과 성적은 좋으나 어떤 전공을 해야 할지 모르는 여학생의 경우 하락이수로 괘를 내어보니 법학이 평생의 갈 길이라 법학을 권유하여 명문대학교에서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일 등을 무척 보람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의 주변에서는 지식층 고객이 많은 것도 특기할만한 사항인데 그는 그를 찾아온 사람들에 하락이수를 비롯한 사주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데에 큰 비중을 두고 결국은 그들로 하여금 이 학문의 우수성을 납득케 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역술인으로서 연륜은 짧은 편이지만 그는 이미 300여명의 고정고객에 대전에만 100여명이 수시로 운세에 대해서 자문을 해오는 등 어느 역술인 못지 않게 성가(聲價)를 높이고 있다.
그는 하락이수로 필자의 평생운과 연운 등을 뽑아 알려 주었는데 이미 하락이수의 명인인 서정기 원장 등에게서 그 전체를 들은 바 있으나 이강산씨는 원칙에 입각한 하락이수의 해석에다가 현대적인 요소까지 곁들여져 전체적으로 선이 굵으면서도 섬세한 내용이 특기할만한데 그 수준은 이미 프로의 경지를 뛰어 넘는 것이었다.
역술에 있어서의 방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술 그 자체를 학문으로 규정하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많다. 그러나 주역의 상수학이라는 하락이수는 평생을 정진해도 해석이 쉽지 않을 정도로 고난도의 연구분야일 뿐만 아니라 주역을 연구하다는 데에 있어서 학문으로 규정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수준이 높은 연구분야다.
5천년 이상을 내려온 이 학문에 젊은 역술인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한다는 것은 우리 나라 역술 발전을 위해서도 고무적인 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강산씨의 앞낲을 주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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