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주와 바이오리듬 이용 백발백중 아들 딸 가려 낳을수 있어-
~명리학의 달인. 오주(五柱)이론의 창시자 박래옥~
명리학은 우리에게 사주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수천년의 역사를 갖고있는 명리학은 오랜세월 명인과 대가들에 의해서 맥을 이어온 학문 이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일반인의 인식부족과 저질 역술인들의 소행 때문에 빛을 잃고 있다.
더구나 당대의 술객 이었다는 도계 박재완 옹과 자강 이석영 옹이 타계한 이후에는 과연 그 맥이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궁금함을 더해주고 있다
명리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서 대가나 명인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않다. 이 학문으로 일가를 이루려면 최소한 30년은 정진해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십 수만을 헤아리는 역술인 중에서 옥석을 가린다는 일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더러는 이런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명리를 깨친 진짜 대가들은 깊은 산중에 있거나 사찰에 있는 스님들일 수도 있다“
‘좋은 친구가 왔구만’
수인(修忍) 박래옥(朴來玉 92년 당시 74세)옹은 젊은 시절 명리의 이치를 깨닫고 고희를 남긴 지금에도 그 철학을 보루처럼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사주에 있어서 명인의 군(群)에 속한다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가장 중요했던 일은 당연히 그들의 실력이었다. 또 그 실력을 판단하는 기준 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중요한 ‘시변경론(時變更論)’을 놓고 보았을 때 가장 명쾌한 답안을 내린 사람이 바로 수인 선생이었다.
일반인 중에서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었다. 분명 명인의 범주에 드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쉽게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 일. 역술계에서는 사실과 달리 자칭‘대가’라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선생의 작은 한옥집은 좌우로 4층 건물에 둘러싸여 볼품이 없어 보였다. 스스로 대가입네 하는 사람들이 커다랗고 호화롭기까지 한 간판을 내건 데에 비하면 파격 이었다.
조그만 문패 하나. 거기에 모자를 쓴 그의 얼굴은 맑아 보여 그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 역시 생각과는 달리 부드럽고 고와 보였다.
“좋은 친구가 왔구만.”
박 옹은 오늘쯤 좋은 친구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좋은 친구가 바로 필자였다고 말했다.
박옹을 처음 만난 날은 지난 ‘92년 12월19일. 음력으로는 임신년(壬申年),임자월(壬子月),무진일(戊辰日). 수인 선생으로는 신,자,진이 합이 되는 날로서 좋은 날에 속하고 상충살이 있어 좋은 친구가 오리라고 생각 했는데 바로 그 친구가 왔다는 것이었다.
“명리는 신비의 세계가 아니야. 명리는 과학이야.그것도 완전한 과학이지.”
명리학 즉 사주가 운명의 과학인 것을 짐작 못한바는 아니나 30년 넘게 명리학의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명리가 과학이라는 그의 말은 이른바 ‘기입자론(氣立子論)’이라는 그의 이론으로 설명되는데 짐짓 어려운 이 부분은 잠시 건너 뛰어야 할 것 같다. 독자들에게 처음부터 많은 양을 전달하다가는 무리수를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옹의 말을 다시 기다려 보자.
“명리라는 것이 꼭 30년을 해야 대가가 되는 것은 아니야. 이치를 깨달으면 10년 만에 깨달을 수도 있는 것이거든.”
여기서 일단 박 옹이 명리학과 인연을 맺게 된 일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 명리학을 배우게 되었고, 사주를 보게 되었을까. 그리고 얼마만에 이치를 깨닫게 되었을까.
박 옹은 1922년생. 전남 순천 태생이다. 가세가 급격히 기울고 사업도 다 망해버려 오갈 데 없는 서른 여섯 나이의 박래옥 청년은 서울서 순천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죽음의 목전에 맞닥뜨린 화산 선생
주머니에는 어느 시점에 가서 목숨을 끊을려고 준비한 청산가리가 한 병 들어 있었다. 그냥 이 세상과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만큼 많은 것을 겪고 살아왔지만 남들이 평생 가야 한 번도 못 할 일들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박 옹은 출생에서 명리와 인연을 맺게 되는 화산 선생과의 만남사이. 즉 36년간의 시간을 그냥 빈칸으로 놔두고 있다. 자신의 말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업도 해보고 정치도 해봤다’고 더 이상은 묻지 말아 달라고 한다.
그가 죽음을 마음에 두고 있었으므로 보는 사람에게 그의 얼굴은 아마 사색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그때 바로 기차의 앞자리에 앉은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대뜸 ‘가진 것 내놔’하고 소리쳤다.
“할아버지 무슨 말씀 이세요?”
박래옥씨는 딱 잡아떼었는지만 할아버지 목소리는 준엄했다.
“글세 내 놓으라면 내놔. 내 눈은 못 속여.”
다시 다그치는 할아버지의 운에서 어떤 경외감을 느꼈지만 죽음을 앞둔 그의 안중에 들어올 리 없었다.
“뭘 내놓으라는 겁니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시치미를 뗐지만 할아버지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위험한 물건 내놔. 그것부터 내놓고 말해. 그렇지 않으면 나도 물러설 수 없어.”
할아버지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박래옥 청년은 그만 청산가리가 든 병을 순순히 내놓고 말앗다.
할아버지와 함께 열차에서 내린 그는 울면서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운명이 무엇인지 기구하기만 했다. 그를 따라 산에 들어갔다.
그 할아버지가 바로 화산(華山) 선생 이었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화산 선생이 조선조 이왕가(李王家)의 후손이며 성이 이씨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더 이상의 것은 알수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화산 선생이 있는 산까지 찾아와 약을 타가고 침을 맞곤 했다. 화산 선생의 빼어난 의술은 온 마을 사람이 인정하는 것 이었다. 그만큼 존경도 받았다.
그러나 의술을 베푼 화산 선생은 결코 돈을 받는 일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양식이 떨어질 때쯤 되면 양식을 갖다 놓고 찬이 떨어질 때면 성의껏 찬을 갖다 놓았다.
그리고도 양식이 남으면 화산 선생은 박래옥씨를 시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게 했다.
첨단과학을 앞서가는 동양의 과학
화산 선생으로부터 3년간 명리의 철학과 비법을 전수 받은 박 옹은 하산 조심스럽게 침술과 역술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결코 댓가를 바라지는 않았다. 화산 선생과 마찬가지로 먹을 것을 갖다 주면 주는대로 쓸 것을 갖다 주면 주는대로 열심히 역술과 의술을 베풀었다.
“화산 선생은 나에게 생명의 은인이고 명리의 스승인데도 나는 지금껏 그분의 이름조차 몰라. 이것도 다 정해진 운명이라면 운명이고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길이 되겠지. 화산 선생으로부터 3년 동안 명리의 이치를 배우고 나는 나름대로 공부했어.”
‘명리의 원전(原典) 중 하나인 자평진전(子平眞詮)을 쓴 사람인 서자평도 스스로 연구를 해서 책을 썼으며 당나라의 재상 이허중 같은 사람도 스스로 배워서 명인이 된 사람인데 나라고 못 하겠느냐’
젊은 나이게 가질 수 있는 오기라고 할 수 있는데 박 옹은 더욱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오묘한 이치를 스스로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앞서 언급한 그의 기입자론이다.
“가령 말이지. 각 시간마다 세밀히 구분해 보면 그것은 아주 작은 초(抄)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각 시간은 그야말로 입자라고 할 수 있고 또한 물질이요 전기와 같은 것이지. 그러니까 기입자가 이동을 하는데 여기에서 변화가 생기는 거야.”
박 옹의 맑은 눈이 조금씩 광채를 띠고 있었다.
그의 진지한 기입자론 설명은 계속된다.
기입자가 운동을 하면 힘이 생기게 된다. 힘이 있기 때문에 원근, 충돌, 견인, 배척의 작용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시간은 잠시도 쉬지 않고 운동을 계속한다. 박 옹은 이것을 ‘오행운동’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근거로 사람의 실체를 소우주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리학의 원리를 규명하는 연구를 하면서 박 옹은 사주의 과학성을 밝혀내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사람은 몇 조 개에 달하는 유전인자로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 유전자라는 것은 세포핵 속에 있다. 세포핵 속에는 모두 스물세 쌍의 염색체가 있고 이와 관련되어 64개의 염기가 있는데 바로 이 64개의 염기는 역학에서의 64괘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 옹은 염기 하나를 구성하는 것을 바로 한 괘라고 부른다.
유전자 속에 있는 이중 나선구조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던 업적인데 이 이중 나선구조 속의 염기로 유전정보를 찾아낼 수 있으며 역학이 이 최신 과학의 이론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박 옹의 이같은 생각은 듣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도 있겠으나 그가 생각하는 핵심은 ‘역학의 원리는 신비한 것이아니라 과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 되겠다.
사주란 무엇인가
여기서 독자들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 잠시 사주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다.
사주(四柱)
말 그대로 네 개의 기둥이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둥이란 자신이 태어난 해가 한 개의 기둥이며 태어난 달과 태어난 날, 태어난 시간이 각각 한 개씩의 기둥을 형성하게 되어 이 네 개를 보고 그 사람의 숙명을 예측케 하는 것이다.
가령 고종황제의 사주를 예로 들면 고종은 1852년 7월 25일 미시(未時) 출생이므로 연주(年柱)는 임자(壬子), 월주(月柱)는 기유(己酉), 일주(日柱)는 계유(癸酉), 시주(時柱)는 기미(己未)가 된다.
이 네 개의 기둥은 모두 여덟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무슨 놈의 팔자가 이렇게 기구하냐’는 말의 팔자란 곧 사주의 팔자를 말하는 것이다.
역술인들은 제대로 본 사주와 관상은 필중(必中)이라고 해서 백발백중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사주는 아무나 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섣불리 배워 써먹는 사주는 실패의 높은 확률을 안고 있다. 좋은 스승과 좋은 교재 그리고 연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갖추어져야 제대로 된 사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지 몇 개월 명리를 공부한다고 해서 또는 몇 년 사주를 공부했다고 해서 사주를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흥미거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믿을만한 것은 못 된다고 정통 역술인들은 입을 모은다.
사주로 알 수 있는 것은 조상이나 부모, 자녀관계, 사회적 지위, 수명, 질병, 결혼, 매년의 운세 등이다. 사주는 대운이라고 해서 매 10년 마다 운이 바뀌는 것을 보는 대정수법과 형, 충, 파, 해 등으로 보는 신살론 등이 있다. 정석으로 본다면 대정수법이라고 할 수 있고 사주의 숫자는 모두 518,400개이지만 같은 사주로 태어났다고 해도 남녀가 다르고 사주의 변화가 많아 실제로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주를 보는데 논란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많은 ‘제시(時) 찾기’에 대해서도 그는 명확한 원칙을 갖고 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시간은 이른바 행정시(行政時)라는 것이지. 정부에서 편리하려고 쓰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표준 시각과는 거리가 있어. 우리의 행정시는 동경 표준시를 기준으로 하는데 동경 표준시는 일본 아카시 천문대 상공에 해가 수직으로 왔을 때를 정오로 삼는 거야. 일본에서도 북해도에서는 동경 표준시보다 빠르고 큐슈에서는 늦지. 그러니 우리가 동경 표준시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야.”
박 옹은 우리 나라 시간의 역사를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다.
선말(鮮末)까지 우리 나라는 고유의 표준시를 사용했다. 땅에 막대기를 꽂아놓고 해가 수직으로 왔을 때 즉 그림자가 하나도 없을 때를 오시(午時)로 잡고 모두 열 둘로 나눈 것이다. 오시 이외의 시간을 아는 방법들은 여러 가지 있었다. 그러다가 일제시대 때부터 사용했던 동경 표준시는 ‘47년까지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이승만 박사가 우리의 시를 다시 찾아오기도 했지만 4․19가 일어난 1960년 10월부터 행정상의 필요에 의해서 다시 동경 표준시를 사용했다.
일본 아카시 천문대와 우리 나라 기상대는 8도의 차이가 난다.
지구가 360도 회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4시간. 1도를 도는데 4분씩 걸리니 동경의 8도란 32도분의 시간. 곧 제 시간을 찾으려면 정확히 32분을 빼야 한다는 것이 박 옹의 말이다. 따라서 사주의 기본이 되는 네 가지 기둥 중 시주(時柱)를 정확히 하려면 이 점부터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의미로 ’49년도부터 ‘60년도까지 그리고 최근에 더러 사용되었던 섬머타임 기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자신이 태어난 시에서 1시간을 빼야 한다.
따라서 이 둘을 합치는 기간에 태어난 사람은 1시간 30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시는 쉽게 바뀌고 전혀 틀린 사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태어나는 아기의 출생 시간도 행정시에서 32분을 제외해야 올바르다는 지적인 것이다.
사주를 통한 아들, 딸 구별
박 옹은 한 때 건강에 이상이 있어 도인술과 내공법(氣功), 요가, 단전호흡 등으로 체력을 돌보았다. 그래도 몸에 이상이 있어 약이나 침을 놓지 않고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여 연동작용을 이용한 고관절 치료법을 개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시술해 주었다고 한다.
박 옹은 사주를 이용해서 남녀를 백발백중 가려 낳을 수 있는 비법도 갖고 있다. 연원일시와 바이오리듬을 이용한 이 방법은 지금껏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행여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까 염려하여 거의 알려주는 법이 없다고 한다.
‘제왕절개를 해서 낳은 아이는 사주가 없다’는 일부 역술인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아이가 태어날 때의 첫 울음은 바로 호흡을 의미하며 그것은 다시 대우주와의 교감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곧 사주가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제 고희를 훨씬 넘긴 박 옹 최대의 숙원 사업은 자신이 일생 동안 연구한 오주(五柱)를 바탕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사주전서(四柱全書)를 펴내는 일이다. 그의 ‘오주’란 지금까지 시의 단위로 되어 있는 사주에 분과 초의 개념인 분주(分柱)를 포함. ‘어떤 일이 어느 달, 어느 시에 일어날 것인가’까지 규명하는 보다 정확한 학문이다. ‘쉽게 써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므로 그의 사주전서는 상당한 분량이 될 전망이다.
그는 요즘 ‘원로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권위는 포용하고 용서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권위는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빈즉수 부즉요(貧卽壽 富卽夭)’
박 옹과 몇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하면서 그야말로 명리의 요체조차 파악하지 못한 필자가 어떻게 명인을 판단하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꿈틀대기도 했다.
박래옥 옹은 기존의 역술계와 거의 교류가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당대의 명인이라는 역술인들도 박 옹의 함자를 모르고 있었다.
박 옹 역시 내로라하는 사주학자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던 사람이 국내에서 유일한 역학 전문지<월간 역학>의 전용원(全龍元) 발행인이었다.
“저는 역술에 권위가 있다는 분들은 꼭 찾아가 봅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오랫동안 사주를 봐왔는데 그것이 지나고 보면 딱 맞아 떨어지더라’는 말들을 하더군요. 해서 저도 만나뵈었는데 명리를 연구해온 기간도 기간이지만 정통적이고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시더군요.”
그의 말에 의하면 숨어 있는 역술의 명인들을 제외하고 ‘박 옹은 우리 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리의 명인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박래옥 선생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명성이나 경력과 달리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랬다.
“화산 선생이 말이야. 나보고 ‘빈즉수 부즉요(貧卽壽 富卽夭)’라고 했어요. 가난하면 수명을 잇고 재물이 쌓이면 일찍 죽는다는 말이겠지. 그래서 나는 재물 욕심이 없어. 재물이 많은 것보다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더 좋지 않느냔 말이지.”
박 옹에 대한 이야기가 활자화된다면 행여나 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나 아닐까 조심스럽게 건강을 물어보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건강이 괜찮아. 청년이 워낙 진지하게 물어와서 만나긴 했지만 나는 그런 데 나오는 것이 좋지 않아.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는 것이 좋아. 이것도 다 인연이니까.”
박 옹과 인터뷰를 끝내고 필자는 조심스럽게 사주를 내놓았다.
“7세 이전에 데이거나, 병약하거나, 수술을 했는가. 첫딸을 낳았는가. 결혼 전후에 말썽이 없었는가...”
박 옹은 잘못 알고 있던 필자의 시(時)를 여러 가지 질문으로 바로잡곤 곧바로 풀이에 들어갔다.
“격국은 신약용인격이요, 용신은 금이다. 파격(破格)이나 38세에 성격(成格)을 이룬다. 지금이 임자월이니 월주가 당신을 도울 것이요...”
박 옹은 필자의 사주를 줄줄이 읊고 있었다. 그것이 신통하게 맞았다거나 어떻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명리가 사람의 운명을 예견하는 과학일지언정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점괘는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신성한 의식에는 철학이 있으며 그 철학은 다시 뜻을 이룰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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